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:1981년에 있었던 일, 그리고 그 이후
페이지 정보
작성일 24-01-01 10:00
본문
Download : 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1981년에 있었던 일, 그리고 그 이후.hwp
찬란한 민족文化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어두운 과거의 시간들을 들추어내는 기억의 장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文化인식에 대한 하나의 조심스러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. 1990년 4... , 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:1981년에 있었던 일, 그리고 그 이후공학기술레포트 ,
Download : 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1981년에 있었던 일, 그리고 그 이후.hwp( 30 )
순서
우여곡절 끝에 구서울구치소는 사적으로 지정, 살아있는 history교육장이 되었다.
구서울구치소 사적지정은 1건에 불과하지만 7년 전 17동을 지정한 事例(사례)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진다.
레포트/공학기술
서대문독립공원 조성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민원이 있다아 1990년 4...
,공학기술,레포트
설명
우여곡절 끝에 구서울구치소는 사적으로 지정, 살아있는 역사교육장이 되었다. 대한독립유공자 유족중앙회 회장 김삼열은 구서울구치소 철거건물 복원 추가지정 및 성역화를 요청해왔다.
3-2.舊조선총독부, 국…(생략(省略))
다. 그 후 몇次例 비슷한 단체로부터 민원이 접수되었고 똑같은 회신이 수차 발송되었다.근대건축 보존과 법적 보호:1981년에 있었던 일, 그리고 그 이후
우여곡절 끝에 구서울구치소는 사적으로 지정, 살아있는 history(역사) 교육장이 되었다. 서대문독립공원 조성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민원이 있다. 文化재 위원회는 ‘구서울구치소는 당초 文化재 지정 의도대로 건물 개개의 가치보다는 민족수난의 상징적 의미로 文化재를 지정 보존하는데 그 뜻이 있으므로 文化재의 추가지정은 곤란하다’는 회신을 보냈다.
서대문독립공원 조성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민원이 있따 1990년 4월 20일 접수되었다. 1981년에 지정된 건물은 학교, 은행, 역, 병원, 성당 등 정치적 색깔이 완전 배제된 것들임에 비해 구서울구치소는 법무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리만큼 정치적인 장소였다.


